본문 바로가기
일상/필사

천 개의 파랑

by 켄탕 2024. 8. 3.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은혜, 연재, 투데이, 콜리, 보경의 삶이 촘촘하게 엮여있으면서도 다 다른 이야기를 갖는게 신기하다.

다만 전달하려는 메세지의 밀도가 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들어간 문장이 계속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로봇이지만 모든 등장인물을 콜리가 위로해준게 역설적이라 재미있었다.

전력질주를 하는 투데이의 몸에서 느껴지는 떨림, 콜리를 수리하는데 몰입하는 연재의 열기를 콜리의 진동과 연결해 몰입하는 생명을 표현한 것도 멋있었다.

 

콜리

"콜리는 짧은 순간 완주해야 한다는 존재 이유와 투데이를 살려야 한다는 규칙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후자를 선택했다. 투데이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그날, 관중석이 꽉 찬 늦여름의 경기에서 콜리는 스스로 낙마했다."

"연재는 그때 손바닥과 다리에서 들개의 엔진을 느꼈고 사람의 심장박동처럼 움직이는 유압기의 피스톤질을 느꼈다."

"콜리는 이 집의 다채로운 소리를 바닥과 벽을 통해 진동으로 느꼈고, 그로 미루어보아 이 집은 살아 있는 집이었다."

"능수능란하고 힘차다. 은혜의 모든 움직임이 콜리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늘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었다."

"살아 있지 않은 걸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인간밖에 없으리라."

 

 

투데이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기른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요."

 

 

보경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꺼진다고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니까요. 3%라는 뜻은 말 그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준비라도 할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거야."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행복만이 유일하게 고통을 이길 수 있으므로."

 

 

은혜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 버리고는 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그렇지만 은혜는 그렇게 호락호락 그들 삶의 위안과 희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시원하게 울었지만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평생토록 울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우는 건 그만두어야 했다."

"속을 갉아먹고 얻은 힘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정한 말이 능사는 아니었다."

"불가능이 없는 시대라지만, 은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다."

"세상의 편견과 고지식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절망스러운 운명에서 구해내지 못했을까."

"나는 이미 자유로워."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임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인류 발전의 가장 큰 발명이 됐던 바퀴도, 다시 한 번 모양을 바꿀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연재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누구라도 틀려. 원래 살아가는 건 틀림의 연속이야."

"단지 앞으로는 레일을 벗어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오직 연재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다면."

"연재에게 세상은 아직까지 집이 전부인걸. 그리고 그 집에서조차 세상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복희와 민주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히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짐승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일임과 동시에 유일한 생존수단이기도 했지만"

"앱이 업데이트되는 속도가 동물의 멸종 속도와 같대요. 제가 앱 하나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 완전히 멸종한다는 괴상한 말이에요."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이제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민주는 말들의 관리인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방에 갇힌 또 다른 말이었다."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요. 인간도 맨발로 다니면 돼요. 그럼 거리는 실내처럼 깨끗해질걸요."

- 맨발걷기길 조성 과정에서의 산림 파괴를 보면 인간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그래도 우리가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보다 늘 나을 거예요."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일상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물질의 사랑  (2) 2024.08.31
눈부신 안부  (0) 2024.08.18
이끼숲  (0) 2024.08.18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0) 2024.08.18
지구 끝의 온실  (0) 2024.08.01